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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처방의 궁합과 효소

  • 관리자 (myungmoon)
  • 2020-06-09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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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면 암 환우들과 편백 숲을 등산하며 회진을 대신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환우들의 몸 상태를 파악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200m 고지에 위치한 병원이라 겨울에 유독 추윘던 편백 등산로에도 어느 덧 봄의 전령인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암 환우들의 몸짓도 봄기운을 받아서인지 겨울보다 훨씬 가벼워 보인다. 식물이나 인간이나 몸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또한, 모든 식물엔 자신을 분해하기 위한 효소가 있다. 이러한 효소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불에 익히면 곧바로 파괴된다. 그렇다고 효소를 먹기 위해 모든 음식을 생식할 수는 없다. 모든 열매나 씨앗은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먹을 때 돌아오는 이득보다 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때 건강과 질병치유를 위해 생식이 유행한 적이 있다. 생식을 해서 건강을 되찾은 경우도 있지만 소화장앵돠 각종 부작용으로 유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몸속에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소화효소가 존재하고 있어서 하루 세끼 정도의 음식물을 소화해낼 수 있게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소화 효소나 대사효소의 생산이 줄거나 과식, 과로 등의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 치료의 목적이나 효소의 효과적인 흡수를 위해 고안된 것이 발효다. 발효시키면 날것을 먹는 부담도 줄지만 독소가 제거되고 효소량도 날것보다 몇 배 더 많아진다. 인체의 소화나 신진대사는 효소의 작용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효소는 음식물이 잘 흡수되도록 잘게 분해하고 흡수된 영양분을 에너지로 바꾸거나 저장한다. 또한 각종 유해물질을 제거하거나 해독하며 포도당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발생한 활성산소를 물과 산소로 환원시키는 일 등을 해낸다.

 

또한, 따뜻한 약재와 찬 약재는 효능이 다르다. 혈을 보강하는 약, 기를 보강하는 약 등도 다 효능이 다르다. 한의학에서는 약재 하나하나의 성분과 효능, 성질에 대해 배우는 과목을 본초학이라 한다. 약재를 개개인의 증상과 체질에 따라 배합해 처방하는데 이를 방제학이라 한다. 김장할 때 배추, 무, 당근, 생강, 마늘, 고춧가루, 멸치젓, 새우젓, 소금 등이 하나하나의 재료인 본초이며, 이를 잘 배합하는 것이 방제이다. 맛있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선 각 재료 적당량 넣어 배추김치는 배추김치에 맞는 양념을, 동치미는 동치미에 맞는 양념을 해야 제맛을 낸다.

 

재료를 이것저것 구분 없이 많이 넣는다고 더 맛있어지지 않는다. 소금을 조금만 더 넣어도 짜서 못 먹고 고춧가루를 너무 많이 넣으면 너무 매워서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효소도 무조건 많은 종류를 넣었다고 꼭 좋은 효소가 되지는 않는다. 한약을 지을 때 한두 가지 이상의 약재를 배합하면 각 약재가 만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방제학에서는 단행(單行), 상수(相須), 상사(相使), 상오(相惡), 상외(相畏), 상반(相反), 상살(相殺) 등 일곱 가지로 나눠 설명하는데 이렇게 약을 짓는 원리를 칠정이라 한다. 즉 경우에 따라 약을 섞어 쓰면 그 효과가 강해지거나 약해지며, 독성을 유발하거나 제거해주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약을 지을 때는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배합과 피해야 할 배합을 예측해 처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약을 처방하는 방제학의 원리 중 하나가 칠정 외에 군신좌사의 원칙이다. 옛날 정치제도를 빗댄 원리인데 군(君)은 임금에 비유해 군약(君藥)을 뜻하며 하나의 처방에서 가장 주된 작용을 하는 약으로 주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다. 신(臣)은 임금에게 조언을 주는 신하에 비유돼 신약(臣藥)을 뜻하며 군약의 효력을 보조해주고 강화시키는 약물이다. 좌약(佐藥)은 군약에 독성이 있는 경우 그 독성을 완화해주거나 주 증상에 수반되는 가벼운 증상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약물로 임금의 정책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를 원하는 신하의 무리로 비유된다. 사(使)는 말단 신하의 뜻으로 약의 기운을 질병 부위로 인도하는 작용(인경작용)과 여러 약을 조화롭게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한약을 처방하는 원리가 체계적으로 확립된 학문을 방제학이라 부르며 이러한 원리에 따라 구성된 처방을 한의사들이 하고 있다. 효소도 방제학의 원리에 따라 만든다면 더욱 좋은 효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같은 감기에 걸려도 개개인의 체력이나 체질에 따라 처방도 다르고 치료법도 다르다. 반대로 다른 병이라 할지라도 치료법이 같을 수도 있다. 이를 동병이치(同病異治), 이병동치(異病同治)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체질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 있다. 음식은 암을 일으키는 발암 물질로도 작용할 수 있고 암을 치료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예전엔 미국의 절반도 안 되던 대장암 발병률이 이미 미국을 앞선 것은 잘 알려진 사실로 육식 위주의 식단이 가져온 결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장암은 고기를 조리할 때 발생하는 헤테로사이클릭아민이 정상세포의 유전자를 비정상적인 돌연변이 유전자로 바꿔 암세포가 된 것이다.

 

요즘 관심사는 힐링이다. 그와 더불어 웰빙식단이 주목받고 있다. 색깔 있는 과일이나 채소 위주의 식단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해충이나 각종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특한 향이나 색깔을 갖고 있는데 최근 그 향이나 색소에 항산화물질이 있어 항암 작용할 수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물질을 총칭해 파이토케미컬이라 부른다. 제철과일이나 채소에 들어 있는 파이토케미컬은 암 억제 유전단백질과 효소를 만들고 암의 신생혈관이 생기는 것을 억제한다고 밝혀졌다. 미국 메디컬스쿨의 마이클 스콘 교수는 쥐에게 발암물질을 투여한 뒤 사과, 배, 아몬드의 껍질에서 추출한 파이토케미컬 물질을 투여했다. 그 결과 파이토케미컬을 투여하지 않은 쥐들보다 투여한 쥐들에게서 종양이 훨씬 드물게 발생했고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침입하는 경우도 적었다. 마이클 스콘 교수는 앞으로 파이토케미컬 물질을 예방과 치료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식품의 항암물질에 대한 실험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마늘, 양파, 브로콜리, 포도, 복분자 등의 과일이나 녹황색 채소의 색소에 들어 있는 성분인 파이토케미컬이 항암작용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색깔별로 파이토케미컬 성분을 살펴보면 청보라색인 안토시아닌과 레스베라트롤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항산화 작용과 발암물질을 해독하는 기능이 있다. 포도나 가지가 대표적이다. 토마토나 수박과 같은 붉은색엔 라이코펜이 함유되어 있어 전립선암과 폐암 억제 효과가 뛰어나다. 대장암에 특히 효과가 있는 녹색엔 설포라판이 함유되어 있다. 노란색엔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있어 유방암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 흰색엔 알리신이 들어 있는데 강력한 살균작용을 하며 위암에 가장 효과적이고 유방암ㅇ과 전립선암에도 효과가 있다.

 

실제 미국암연구협회가 조사한 결과 채소와 과일을 하루 400g 섭취한 경우 대장암 발병률이 최대 31%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 환우들은 보이는 암을 제거하는 데만 관심을 두고 먹는 문제엔 관심이 부족하다. 암이 사망원인 1위지만 영양결핍도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립암센터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암 치료 환우 10명 중 6명이 영양결핍이며 그중 절반은 심각한 상태이다. 암 환자 중 20%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이 영양실조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입원한 암 환우분들은 대개 6주, 길게는 3달 정도 항암치료를 하는데, 중간에 체력적으로 견디지 못해 치료를 쉬는 분도 있고 아예 식사를 못하는 분들도 있다. 반대로 치료기간에도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자기 체력도 유지하는 분도 있는데, 특히 원래 몸무게를 유지하는 분들은 대개 치료 경과가 상당히 좋으면서 긍정적이다.

 

초식동물인 기린이 동물의 뼈를 먹는 것이 카메라에 잡힌 적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학자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산성비로 인하여 나뭇잎의 칼슘과 인이 부족해져 기린은 나뭇잎에서 보충하지 못하는 인과 칼슘을 동물의 뼈에서 보충한다는 것이다. 야생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야생동물은 자연 상태에서는 병사하지 않고 자연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먹고 싶은 대로 먹으니까 건강하다는 것이다. 초식동물은 젖 뗀 후, 바로 본능적으로 어떤 풀은 먹어야 하고 어떤 풀은 먹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 어떤 동물은 다쳤을 때 상처에 효과가 있는 풀을 본능적으로 찾아서 먹는다고 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에게 알맞은 음식을 본능적으로 아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을 때는 몸의 기능이 떨어져 자신의 몸에 필요한 것이 당기지 않는다. 오히려 몸이 나쁜 만큼 해로운 것이 더 먹고 싶고 더 당기는 수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데 어떤 음식이 몹시 먹고 싶어서 먹었더니 그만 탈이 나서 병이 나거나 병이 악화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병이 나거나 병이 악화되려면 유달리 해로운 것이 많이 당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음식을 체질에 맞게 가려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자신의 체질을 모를 때는 함부로 가려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럴 땐 그냥 골고루 먹는 것이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다. 체질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소식해야 하며, 천천히 식사하고 간은 싱겁게 하는 것이 좋다. 저녁 늦게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고 인스턴트식품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결론적으로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면 구태여 음식을 특별히 가릴 필요는 없으며, 단지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 무엇이며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만 하면 된다. 몸이 좋지 않으면 가려 먹는 것이 좋으며, 병이 심할수록 가려야 한다. 해로운 것이 당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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